KBS HD역사스페셜 – 김부식은 왜 삼국사기를 썼나

Share
Embed
  • 
    Loading...
  • Published on:  1/8/2020
  • -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집필하게 된 동기는?
    김부식이 정계를 물러나자 고려 인종은 삼국사기의 집필을 명한다.
    중국의 역사는 밝으면서 우리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시작된 삼국사기 집필. 삼국사기는 김부식의 생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고기〉, 즉 옛날의 기록들을 토대로 작성됐다.
    그 집필 동기에서부터 사대주의와는 관계가 없었다.

    - 김부식은 왜 묘청의 난을 진압했나?
    과연 묘청의 무리는 사대주의와 외세를 배척한 자주적인 국가를 건설하려 했을까? 금나라 정벌은 실현가능했던 주장이었을까?
    김부식은 북송 황제의 즉위축하사절로 갔다가, 금나라 군대에 북송이 멸망하고 황제가 금나라로 압송되어 가는 상황을 목격한다.
    묘청과 정지상 등이 주장한 금나라 정벌은 국가를 일대 혼란으로 몰아넣고 고려의 멸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김부식은 생각하고 있었다.

    - 김부식은 사대주의자인가?
    왕조가 멸망되었을 때, 백성이 어떤 고통을 받게 되는지를 잘 알고 있던 김부식은 전쟁이 아닌 외교로 국가가 보존되기를 바랐다.
    또한 전쟁이 아닌 외교로 국가 멸망을 막고자 했다. 백성이 전쟁으로 피를 흘리지 않아야 한다는 김부식의 주장은 사대주의자로 비난받는이유가 됐다. 그러나 김부식은 고구려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긴 사실을 기뻐하며 당태종의 침략을 비난하고 있다.

    - 신라위주로 역사서를 개서했는가?
    삼국사기는 신라에 대한 기록이 가장 많다. 따라서 삼국사기는 신라위주로 만들어졌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통일신라기를 제외하고 삼국이 함께 있던 시기의 기록만을 분석하면 신라보다 오히려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더 많다.
    고구려의 열전은 자료가 없어, 본기에 이미 나왔던 기록을 그대로 다시 열전에 실으면서까지 고구려의 기록을 늘리려고 애를 썼다. 삼국의 균형을 위해 노력한 김부식에게 신라위주로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난은 근거가 없다.

    - 황제의 기록! 고구려 〈본기〉를 남기다
    황제의 역사는 ‘본기’ 라 하고, 제후의 역사는 ‘세가’ 라 한다.
    김부식은 고구려의 역사를 고구려 본기로 만들어 후세에 전함으로써 고구려사가 중국의 역사가 아님을 분명히 해두고 있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수만 편의 논문이 제시된다 해도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만 정확히 제시하면, 모든 논란은 사라질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삼국사기를 정확히 읽지 않고 함부로 폄하해 온 대부분의 사실들은 근거 없는 주장이었다.

    HD역사스페셜 41회 – 김부식은 왜 삼국사기를 썼나 (2006.3.24.방송)
    http://history.kbs.co.kr/
Loading...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