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서울시, 한국인 위안부 증명할 영상자료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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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ublished on:  7/4/2017
  • 아시아·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6월, 미중 연합군은 중국 내 송산과 등충, 용릉 등을 점령 중이었던 일본군을 공격한다. 이때 일본군 위안부로 있던 24명 중 10명이 미중 연합군의 포로로 잡혔고 14명은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거나 전투 중 사망했다. 이 당시 모습을 담은 위안부 사진은 세상에 공개돼 한국인 위안부의 참상을 증명하는 자료로 활용됐다.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준비 과정에서는 피해자 박영심(1993년 피해 증언, 2006년 별세) 할머니가 사진 속 만삭의 여성이 자신이라고 스스로 밝히며 다시 한 번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17년 7월, 당시 사진 속 송산에 포로로 잡혀있던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를 촬영한 18초짜리 흑백 영상이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이하 서울대 연구팀)는 2년여 간의 발굴 조사 끝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70년 넘게 잠자고 있던 한국인 위안부 영상을 발굴했다고 5일 밝혔다.

    이 영상은 당시 미중연합군으로 활동했던 미군 164통신대 사진대 배속 사진병(에드워드 페이(Edwards C. Fay) 병장 추정)이 1944년 9월 8일 직후 촬영해 소장했던 것으로, 시와 서울대 연구팀은 2년 전부터 기발굴된 문서와 사진 등을 분석해 관련 정보를 추적하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필름 릴(reel) 가운데 수백 통을 일일이 확인해 이번 영상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영상은 미&중연합군으로 활동했던 미군 164통신대 사진대 배속 사진병〈페이(Edwards C. Fay) 병장 추정〉이 1944년 9월 8일 직후 촬영한 것이다.

    영상 속에는 중국 송산에서 포로로 잡힌 한국인 위안부를 포함해 7명의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 미중연합군 산하 제8군사령부 참모장교 신 카이(Shin Kai) 대위로 추정되는 남성은 한 위안부 여성과만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나머지 여성들은 초조하거나 두려운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다. 영상 속 장소는 미중연합군 제8군 사령부가 임시로 사용한 민가 건물로, 이곳에서 위안부 포로 심문이 이뤄졌다. 포로로 잡혔을 당시 만삭이었던 고(故) 박영심 할머니는 탈출 과정에서 사산해 중국군의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영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연구팀은 영상 속 인물들을 한국인 위안부로 입증할 수 있는 근거로 앞서 2000년 고(故) 박영심 할머니가 자신이라고 밝혔던 사진과 영상 속 인물들의 얼굴과 옷차림이 동일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또 영상 속 한국인 위안부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특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들은 미중연합군이 이후 포로 심문과정에서 생산한‘조선인 위안부 명부’에 있는 여성들이라고 설명했다.

    발굴 조사는 국내외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기록물로 관리해 역사적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서울시의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사업의 하나로 이뤄졌다. 연구팀 관계자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일본 정부와 군의 공문서가 압도적으로 많이 활용되고 국내 연구자들의 문서 접근은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태국 등에서의 조사&발굴 활동을 통한 자료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서울대 연구팀은 지금까지 발굴한 문서와 증언, 사진, 영상 자료를 통해 관련 연구와 외교적 역량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한편, 시민참여 강연회 교육자료 등 시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 콘텐츠 제작에도 활용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오는 9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될 수 있도록 공모전, 학술대회, 전시 개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시와 서울대 연구팀은 이밖에도 영상을 촬영한 페이 병장이 일본군 위안소로 활용됐던 건물을 촬영한 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이 건물은 용릉에 위치한 그랜드 호텔이라 불리던 곳으로, 미중연합군이 용릉을 점령한 직후인 1944년 11월 4일 53초 길이로 촬영됐다.

    이번 연구조사에 참여한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강성현 교수는 “이 영상의 존재에 대한 단서를 찾은 후 2년 동안 관련 정보를 모으고 추적했고, 서울시의 지원과 연구팀 및 현지 연구원인 김한상 박사의 활약이 더해져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자료를 일일이 찾고 열람해야 하는 과정이 한국에서 김서방을 찾는 일과 같아 쉽지는 않지만 더 늦기 전에 일본군 위안부 자료의 체계적 조사와 수집이 필요한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인 조사 발굴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영상제공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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